일제강점기 도이칠란트 한인들의 독립운동4-② 이미륵

3.1운동 100주년 기념 특집기사 : 본 기사는 3.1운동 100주년 기념 특집기사로서 일제 강점기 독일에 거주한 한인들이 펼친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기존의 문헌이나 연구 결과물에 기초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후원>
일제강점기 도이칠란트 한인들의 독립운동4-② 이미륵

이미륵(李彌勒, Mirok Li, 본명: 이의경 李儀景, 1899년3월8일~1950년3월20일)이미륵 박사가 처음 국내에 알려진 것은 전혜린이 1959년 이미륵 작품 《압록강은 흐른다》(Der Yalu Fliesst)를 번역, 발표하면서부터다.

2011년 12월 사단법인 이미륵박사기념사업회(회장 정규화)가 인천에 설립됐다. 이미륵 박사 연구와 알리기에 40년 넘게 힘써온 정규화(‘이미륵 평전 저자’, 전 성신여대 독문학과 교수) 선생과 이미륵 선생의 유가족이 애를 썼다. 1980년대에 만들어진 이미륵박사기념사업회를 사단법인으로 등록한 것이다. 기념사업회가 인천에 둥지를 튼 것은 이미륵 박사의 큰누이 이의선씨의 외손자가 인천에 정착해 터전을 일궜기 때문이다.

출처 : 인천투데이(http://www.incheontoday.com)”

이미륵 선생님은 독일에 거주하는 한국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다. 뮌헨 슈바빙에는 ‘이미륵 한국문화공간’이 있다. 이미륵기념사업회 독일회장을 역임한 송준근씨가 사비를 털어 마련했다. 뮌헨에 오는 관광객들이 이 곳에 들러서 이미륵 선생님을 오래 기억했으면 좋겠다.” (박수영 이미륵기념사업회 독일회장)

이미륵(李彌勒, Mirok Li, 본명: 이의경(李儀景), 1899년 3월 8일 ~ 1950년 3월 20일)은 황해도 해주(현 황해남도) 출생의 망명 작가이다. 본명은 이의경(李儀景)이며 독일식 이름은 MirokLi(미로크 리)이다. 이미륵은 1남 3녀 가운데 1남으로 태어나 서당에서 한문을 공부하였으며, 옛 풍습에 따라 조혼하여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이미륵의 주요 작품 1946 《압록강은 흐른다》(독일어: Der Yalu fließt)- Roman. München: Piper; erneutaufgelegt: St. Ottilien: EOS- Verlag, 1996 1972 《이야기》(독일어: Iyagi). kurze koreanische Erzählungen). St. Ottilien: EOSVerlag; erneut aufgelegt: ebenda, 1996 1982 《그래도 압록강은 흐른다》(독일어: Vom Yalu bis zur Isar) . Erzählungen.Waegwan: Benedict-Press 1984 《또 다른 방언》(독일어: Der andere Dialekt). 성신여자대학교 출판부대표작 ‘압록강은 흐른다’는 1946년 뮌헨의 피퍼 출판사에서 출간됐다. 이 소설은 나오자마자현지 문단과 독자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전쟁으로 인한 평화, 인간성 상실의 문제를 애잔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하이드리히 피퍼 출판사 사장은 회고록에서 “내가 평생 출판한 책들 중에서 가장 훌륭한 책중 하나”라고 고백했다. 당시 독일 평론가들은 그의 문장을 유대계 독일 작가 프란츠 카프카(1883~1924)나 독일 소설가 베른하르트 슐링크(74)에 견줄 만큼 뛰어나다고 평했다. 그해 최고의 책으로 선정돼 영문과 국문으로 번역됐으며,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어로 씌어진 가장빼어난 문장”이라는 극찬까지 받았다. 독일 신문에 쏟아진 서평은 100여편에 달했으며, 발췌문이 독일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박 회장은 “‘압록강은 흐른다’는 문장이 기가막히다”며 “요즘의 한국사람들이 읽어도 감동적이다. 폭풍과 같은 삶을 살았고, 나라를 빼앗긴설움이 있었을텐데 그것을 절제한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얼마나 행복했고 평온했는지를 뛰어난 독일어 문장으로 잘 그려냈다”고 말했다.”슬픔을 문학적으로 승화시켰기 때문에 더 감동적인 것 같다. 당시 독일 독자들에게 한국은 낯선 나라였다. 망명 온 이미륵의 소설에서 노스탤지어를 느꼈고, 작가의 삶에도 관심을 가졌다. 휴머니즘과 애상적인 절제미가 독일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한국사람들은 쾌활하고 춤추기를 즐기며 몽상적이기도 하지만, 산처럼 완고하고, 뜨거운 여름만큼이나 호탕하다”(이미륵 단편 ‘수암과 미륵’ 중, 1935년 6월)이미륵 부조동상건립이미륵기념사업회는 그래펠핑 시, 한국 국외소재 문화재재단과 함께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내년 5월께 뮌헨 인근 그래펠핑 시에서 이미륵 부조 동상을 길에 새기는 제막식이 열릴 예정이다.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미륵 선생님처럼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분들을 기려야 한다. 한국 정부가 관심을 갖고 재조명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이미륵기념사업회는 그래펠핑 시, 한국 국외소재 문화재재단과 함께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내년5월께 뮌헨 인근 그래펠핑 시에서 이미륵 부조 동상을 길에 새기는 제막식이 열릴 예정이다.”이 거리는 원래 반나치 활동을 하다가 처형당한 후버 교수의 이름을 딴 ‘후버 거리'(Hubert Reißner Strasse)다. 이 곳에 이미 후버 교수의 동상이 있다.

 

<2019년 5월 28일 그레펠핑시 중심가에 이미륵 박사 부조동판이 후버 교수 부조동판과 마주보고 설치됐다.>

이미륵 부조 동상은 그 근처 어딘가에 새겨지는 것이다. 나치 하에서 이미륵 선생과 후버 교수는 제자와 선생이었고, 같은이웃에 살면서 많은 걸 교류했다. 독일사회가 이 특별한 관계를 기억하고, 문학성·휴머니즘 등이미륵이라는 총체적인 인간을 기리고자 하는 것이다. 독일의 거리에서 이미륵 선생님의 부조동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성공적으로 추진되길 바란다.

1.↑ 최종고, 《韓獨交涉史》 홍성사 (1983) 202쪽,

“이 안봉근과 연결되어 독일로 유학을 건너간 사람으로 유명한 이의경(李儀景; 미륵)씨가 있다. … 그는 안씨로부터 독일까지 가기만 하면 어떻게든지 살 수 있고 공부도 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상해에서 중국 여권을 입수하여 이름을 Yiking Li라고 중국식으로 고쳐 쓰고 프랑스 마르세유로 가는 배를 탔다. 이들은 마르세유에서 빌헬름 신부의 도움을 받아 독일의 뷔르츠부르크(Würzburg)로 간 후 다시 상트 오틸리엔(St. Ottilien)으로 가서 베네딕트회 수도원에 머물게 되었다.”이미륵은 황해도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생을 마감한 재독동포 작가다. 경성의학전문을 다니던중 1919년 결성된 독립운동단체 ‘대한청년외교단’에 가담했다. 3·1 운동 후 일본 경찰에 쫓기자 중국 상하이와 프랑스를 거쳐 1920년 독일로 망명했다. 뮌헨대에서 동물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여러 편의 자전적 소설을 발표했다. 1948년부터 뮌헨대학 동양학부 외래교수로 초빙돼 한국학과 동양철학을 강의했다. 1963년 독립운동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받았으며,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대표작’압록강은 흐른다’는 1946년 뮌헨의 피퍼 출판사에서 출간됐다. 이 소설은 나오자마자 현지문단과 독자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전쟁으로 인한 평화, 인간성 상실의 문제를 애잔하게풀어낸 작품이다. 하이드리히 피퍼 출판사 사장은 회고록에서 “내가 평생 출판한 책들 중에서 가장 훌륭한 책중 하나”라고 고백했다. 당시 독일 평론가들은 그의 문장을 유대계 독일 작가 프란츠 카프카(1883~1924)나 독일 소설가 베른하르트 슐링크(74)에 견줄 만큼 뛰어나다고 평했다. 그해 최고의 책으로 선정돼 영문과 국문으로 번역됐으며,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어로 씌어진 가장 빼어난 문장”이라는 극찬까지 받았다. 독일 신문에 쏟아진 서평은 100여편에 달했으며, 발췌문이 독일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박 회장은 “‘압록강은 흐른다’는 문장이 기가막히다”며 “요즘의 한국사람들이 읽어도 감동적이다. 폭풍과 같은 삶을 살았고, 나라를 빼앗긴 설움이 있었을 텐데 그것을 절제한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얼마나 행복했고 평온했는지를 뛰어난 독일어 문장으로 잘 그려냈다”고 말했다.”슬픔을 문학적으로 승화시켰기 때문에 더 감동적인 것 같다. 당시 독일 독자들에게 한국은낯선 나라였다. 망명 온 이미륵의 소설에서 노스탤지어를 느꼈고, 작가의 삶에도 관심을 가졌다. 휴머니즘과 애상적인 절제미가 독일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한국사람들은 쾌활하고 춤추기를 즐기며 몽상적이기도 하지만, 산처럼 완고하고, 뜨거운 여름만큼이나 호탕하다”(이미륵 단편 ‘수암과 미륵’ 중, 1935년 6월)

(이 순 희, 유 종 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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