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독일 한인들의 독립운동 (1)

3.1운동 100주년 기념 특집기사 : 본 기사는 3.1운동 100주년 기념 특집기사로서 일제 강점기 독일에 거주한 한인들이 펼친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기존의 문헌이나 연구 결과물에 기초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후원>

일제강점기 독일 한인들의 독립운동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유덕고려학우회(留德高麗學友會)

정의

1921년 1월 1일 독일 베를린에서 결성된 유럽 최초의 유학생 단체.

영역열기연원 및 변천

독일에 유학 한인학생들을 중심으로 1921년 1월 1일 베를린에서 유럽 최초의 유학생단체인 유덕고려학우회(留德高麗學友會, 獨逸留學高麗學友會)를 결성하였다. 유덕고려학우회를 창립할 당시 주요 인물은 김갑수(金甲洙)·윤건중(尹建重) 등 11명 내외였다. 설립 목적은 학생 자체의 발전과 친목을 도모하고 한인의 자치와 외교에 관한 활동을 주관하기 위함이었다. 유덕고려학우회에서 1920년대 독일 거류한인들의 수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1923년의 경우 한인거류인은 55명이고 유학생은 10개 대학 33명으로 총 88명이었다. 주요 인물은 간사장을 맡고 있었던 김갑수와 서무를 맡고 있었던 윤건중 등이었으며, 1923년의 경우 이극로(李克魯)·김준연(金俊淵) 등이 임원으로 활동하였다. 1924년 기록에 의하면 서무 또는 서기에 이극로, 회계에 김필수(金弼洙)가 활동하였던 것으로 나타난다. 일제의 자료에 의하면, 1924년 5월 현재 한인 유학생은 58명이라고 하고, 1925년 4월경에는 52~53명 정도라고 한다.

유덕고려학우회의 사무실은 칸트슈트라세(Kantstraße) 122번지였고, 자신들의 기관지로『회보(Heba)』라는 잡지를 발행하여 재독한인의 동향과 국내외의 소식을 알렸다. 이 잡지는 1925년 10월 당시 제4호가 발간된 것으로 보아, 1923년 10월 26일 개최된 ‘재독한인대회’ 이후부터인 1924년경에 출간된 것같다. 유덕고려학우회의 회원들은 대부분 고학으로 학업을 유지하는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학생 상호간의 구제활동과 상해 임시정부를 지원 및 대외선전활동, 유럽에서 개최되는 민간차원의 국제대회 참가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특히, 유덕고려학우회에서는 1921년 11월경「통고문」이라는 선전문을 발표하여 임시정부 지지와 존속을 위한 입장을 대내외적으로 선포하였다.

기능과 역할

1923년 9월 1일 일본에서 이른바 ‘관동대지진(關東大地震)’이 발생하였다. 그런데 일제는 대지진 피해 대책이 미진하여 민중폭동으로 이어질 것에 겁을 먹었고, 이같은 불만을 돌리기 위한 돌파구로 무고한 재일 한국인을 학살하였던 것이다. 관동대지진 당시 일본인들이 한국인들을 집단 학살하였다는 사실이 독일에도 알려지게 되었다. 독일인으로 동양미술을 전공한 부르크하르트 박사가『보시쉐 자이퉁(Vossiche Zeitung)』 1923년 10월 9일자에「한인에 대한 대량학살」이라는 제목으로 그가 직접 목도한 바를 게재하였던 것이다. 부르크하르트 박사가 쓴 기사를 본 재독 한인들을 크게 분노하였고, 유덕고려학우회에서는 10월 12일 ‘한인학살’과 ‘동포에게 고함’이라는 제목을 전단을 제작하여 유럽과 미주, 상해 임시정부에 배포하였다. 이를 통해 재독한인들은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고 항일의지를 대외에 알렸다.

유덕고려학우회에서는 한인들의 피해를 조사하기 위해 그해 10월 18일 고일청과 황진남을 부르크하르트 박사와 면담을 추진하였다. 그리고 10월 26일 독일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독일에 있는 한인들의 위대한 회의(Great Meeting of Koreans in Germany)」라고 일컬어지는 ‘재독한인대회’를 개최하였던 것이다. 이 대회는 일제가 관동대진재 때 저지른 만행을 세계 각국에 널리 알릴 목적으로 개최되었는데, 관동대지진 발생 시 일제의 만행으로 당한 한인들의 억울한 죽음과 일제의 가혹한 식민통치를 규탄하였다. 그리고 재독한인들은 독일어 전단지 5천부, 영어 전단지 2천부를 인쇄하여 해외 한인사회와 각국 정부와 기관 등에 배포하였다. 유덕고려학우회가 재독한인대회에서 배포한 독일어 전단지는「한국에서 일본의 유혈통치(Japanische Blutherrschaft in Korea)」이고, 영문으로는「Japan`s Bloody Rule in Korea」이다. 이 선전문은 영문과 독문으로 만들어 각국의 주요 정부와 국민들에게 배포하기 위해 특별히 제작된 것이었다.

재독한인대회에서 배포한 선전문에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의 지도가 크게 그려져 있다. 선전문의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첫 부분은 오랜 역사를 가진 한국의 독립된 역사 전통과 이를 침해한 일제의 침략과 식민통치,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 사실 등을 적고 있다. 두 번째 부분은 관동대지진으로 나타난 일제에 의한 한인참상의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마지막 부분은 한국독립의 열망을 밝히고 독립을 위한 한인들의 투쟁을 각국의 정부와 국민들이 적극 지지해 줄 것을 호소하였다. 이 대회에서 재독 한인들은 일제의 한국지배를 비난하고 독립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참고문헌

유럽 한인의 역사 (국사편찬위원회, 2013)

「1920년대 유럽에서의 한국독립운동」(홍선표,『한국독립운동사연구』27,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2006)

재독한인대회(在獨韓人大會)

정의

1923년 10월 23일 독일 베를린에서 관동대지진 당시 일제가 저지른 만행을 널리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개최한 민족대회.

연원 및 변천

1923년 9월 1일 일본에서 이른바 ‘관동대지진(關東大地震)’이 발생하였다. 관동대지진은 9월 1일 오전 11시 58분에 도쿄(東京), 요코하마(橫濱)를 시작으로 주변 각지를 덮치는 커다란 재해였다. 그런데 일본인들이 한국인에 대한 대학살은 지진이 발생한 다음날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키고 있다. 폭탄을 소지하고, 방화를 하고, 우물에 독극물을 집어던지고 있다”라는 이상한 소문이 떠돌았다. 이 근거없는 유언비어는 무고하게 한국인을 집단학살을 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일제의 군경과 자위단이 한국인을 찾아서 학살을 자행하였던 것이다. 일제는 대지진 피해 대책이 미진하여 여론이 험악해지고 이에 대한 불만이 곧 민중폭동으로 이어질 것에 겁을 먹었고, 이같은 불만을 돌리기 위한 돌파구로 무고한 한국인을 학살하였던 것이다.

일본인들이 한국인들을 집단 학살하였다는 사실은 독일인으로 동양미술을 전공한 부르크하르트 박사가 『보시쉐 자이퉁(Vossiche Zeitung)』 1923년 10월 9일자에 「한인에 대한 대량학살」이라는 제목으로 게재하였던 것이다. 그는 1923년 9월 1일부터 8일까지 일본에 체류하고 있을 때 관동대지진가 발생하였으며, 이때 한인들이 일본인들에게 참상을 당하는 현장을 보았던 것이다. 부르크하르트 박사가 쓴 기사를 본 재독 한인들을 크게 분노하였고, 유덕고려학우회(留德高麗學友會)에서는 10월 12일 ‘한인학살’과 ‘동포에게 고함’이라는 제목을 전단을 제작하여 유럽과 미주, 상해 임시정부에 배포하였다. 이를 통해 재독한인들은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고 항일의지를 대외에 알렸다.

기능과 역할

유덕고려학우회에서는 한인들의 피해를 조사하기 위해 그해 10월 18일 고일청과 황진남을 부르크하르트 박사와 면담을 추진하였다. 그리고 10월 26일 독일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독일에 있는 한인들의 위대한 회의(Great Meeting of Koreans in Germany)」라고 일컬어지는 ‘재독한인대회’를 개최하였던 것이다. 이 대회는 일제가 관동대진재 때 저지른 만행을 세계 각국에 널리 알릴 목적으로 개최되었는데, 관동대지진 발생 시 일제의 만행으로 당한 한인들의 억울한 죽음과 일제의 가혹한 식민통치를 규탄하였다. 그리고 재독한인들은 독일어 전단지 5천부, 영어 전단지 2천부를 인쇄하여 해외 한인사회와 각국 정부와 기관 등에 배포하였다. 유덕고려학우회가 재독한인대회에서 배포한 독일어 전단지는 「한국에서 일본의 유혈통치(Japanische Blutherrschaft in Korea)」이고, 영문으로는 「Japan`s Bloody Rule in Korea」이다. 이 선전문은 영문과 독문으로 만들어 각국의 주요 정부와 국민들에게 배포하기 위해 특별히 제작된 것이었다.

재독한인대회에서 배포한 선전문에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의 지도가 크게 그려져 있다. 선전문의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첫 부분은 오랜 역사를 가진 한국의 독립된 역사 전통과 이를 침해한 일제의 침략과 식민통치,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 사실 등을 적고 있다. 두 번째 부분은 관동대지진 때 일제가 저질른 참상을 기록하고 있다. 마지막 부분은 한국독립의 열망을 밝히고 독립을 위한 한인들의 투쟁을 각국의 정부와 국민들이 적극 지지해 줄 것을 호소하였다. 이 대회에서 재독 한인들은 일제의 한국지배를 비난하고 독립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재독한인대회에서 배포한 선전문에는 세 명의 한인 서명자가 있다. 이중 확인된 인물로는 이극로(Li Kolu)와 김준연(C. Y. Kim)·고일청(Jh Tsing Kao)이다. 또한 유덕고려학우회는 영어와 독일어 선전문 외에도 한문으로 번역한 「통고문(痛告文)」도 제작해 구미 각지에 재류하는 중국인들에게 보냈다.

관동대지진 때 일제의 한국인 학살을 전 세계에 알린 이극로는 1924년 2월 베를린 소재 지텐벨트(Siettenfeld)에서 『Unabhä̈ngigkeitsbewegung Koreas und Japanische Eroberungspolitik(『한국의 독립운동과 일본의 침략정책』)』 이라는 소책자를 출판하였다.

참고문헌

유럽 한인의 역사 (국사편찬위원회, 2013)

「관동대지진 때 학살에 대한 歐美 한인세력의 대응」(홍선표,『동북아역사논총』43,동북아역사재단,2014)

( 채수웅 지사장,  이순희,  최양현 기자 )     *  한국언론진흥재단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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