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르크,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행사 성황리 개최

함부르크,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행사 성황리 개최

함부르크 한인회와 주함부르크 대한민국총영사관 공동주최, 함부르크 한인학교와 함부르크 동포단체 동참, 전 한인 축제로 승화시켜

HAMBURG】3.1운동 100주년인 2019년 3월1일 함부르크에서도 한인동포들의 대한 독립 만세 소리가 하늘 높이 울려 퍼졌다. 이날 행사는 함부르크 한인회(회장 방미석)와 주함부르크 대한민국 총영사관(총영사 신성철)이 공동주최하고, 함부르크한인학교(교장 김은숙) 학생들과 교사, 학부형들, 각 한인단체들이 핵심 멤버로 동참하였을 뿐만 아니라 전 한인회원들이 한마음으로 한데 어우러졌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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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르크 리히트바르크강당(Lichtwarksaal)에서 오후 5시부터 시작한 행사에는 함부르크 신성철 총영사 내외, 김학성 부총영사, 김용찬 코트라 함부르크무역관장, 함부르크 한인단체장, 함부르크한인학교 학생, 교장, 교사, 운영위원장, 함부르크와 인근지역 거주 동포 등 150여 명이 참석했다. 행사는 김진호 함부르크 한인회 수석 부회장의 우렁찬 목소리로 엄숙하고도 근엄하게 진행되었다.

국민의례에 이은 회장 축사에서 방미석 회장은 “오늘은 3.1독립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아주 뜻 깊은 날”이라며, 100년 전 1919년 3월1일 서울 탑골 공원에서 외쳤던 비폭력 만세운동이, “대한독립만세!”가 바로 오늘의 우리나라 대한민국과 우리, 우리 가정을 있게 했다면서, 다시는 그 아프고 치욕스럽고 참혹한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그날의 슬프고 아픈 역사를 잊지 말고 소중히 간직하여 참 교훈으로 삼자고 역설하였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을 잘 되새겨야 한다”고 강조한 방 회장은 “요즘 젊은이들에 대한 역사 교육이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면서, 우리 역사 교육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다음 순서로 신성철 총영사의 역사 강연이 이어졌다. 신 총영사는“3.1 운동이 발생한 시대적 배경, 전개과정 및 파급효과”를 주제로 강연했다. 참석자들은 신 총영사의 역사 강연을 주의를 집중해 관심 깊게 경청하였다(강연내용 맨아래).

이어서 독립선언문 낭독 순서에서 함부르크 한인학교 학생들과 교사, 교장, 여러 단체장들이 100년 전 그 날을 생각하며 목소리에 한껏 힘을 주어 엄숙하게 독립 선언문을 낭독하였다. △ 함부르크한인학교 7학년 박민성 학생 △ 함부르크한인학교 김은숙 교장 △ 재독한국문인회 정명옥 회장 △ 현대상선 최덕림 법인장 △ 함부르크한인교회 김광철 목사 △ 북부한인글뤽아우프 허채열 회장 △ 대한노인회 독일지회 북부분회 이종우 분회장 △ 함부르크여성회 김계희 부회장이 독립 선언문을 낭독하였으며, 함부르크한인학교 학생과 교사 등이 민족대표 33인 역을 맡았다.

한인학교 특별 출연 순서에서 학생과 교사 학부모들이 모두 흰옷으로 곱게 차려 입고 손에 손에 태극기를 들고 아리랑과 함께하는 플래시몹을 연출하였다. 바이올린 등 악기를 연주하고, 태극기를 흔들며 ‘고향의 봄’과 ‘아리랑’을 불러 여러 사람들로 부터 귀여움과 사랑을 독차지하였다. 참석한 모든 이들이 다 함께 삼일절 노래를  합창하였다.

이어 곽용구 한인회 고문 선창에 따라 모두 다같이 100년 전에 만세를 부르던 우리 선열들을 생각하면서, 행사장이 떠나가도록 만세삼창을 우렁차게 외쳤다.

축가로 양승우(테너) 한규호(바스 바라톤) 김지언(소프라노)이 ‘선구자’, ‘비목’, ‘홀로 아리랑’, ‘Freude schöner Gotterfunken(환희여, 아름다운 신들의 찬란함이여)’ 등을 불러 참석자들로 부터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마지막 순서로 김동민 한인회 부회장과 양승우 학생이 애국시 ‘3월1일의 하늘(박두진 시)’와 ‘독립의 붓,(김남주 시)’을 은은한 피아노 반주에 맞춰 낭송하여 참석자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행사가 끝나고 참석자들은 함부르크 한인회 임원들이 정성껏 준비한 푸짐한 한식 다과, 떡 등과, 특히 신성철 주함부르크 총영사 부인이 손수 만들어 낸 호두과자, 약밥을 오손 도손 나누며 즐겁고 행복한 화합의 시간을 가졌다.

– 신성철 총영사 강연내용 중에서 –

3.1운동이 발생한 시대적 배경, 전개과정 및 파급효과

3.1 운동은 1910년 일제 강점 이후 무단통치에 대한 민족적 자존심 고양 및 제1차 세계대전후 미국 윌슨대통령의 민족 자결주의와 1917년 러시아 혁명에 의한 피압박 민족의 해방을 지원하는 국제정세의 변화를 간파한 상해에 체류하고 있던 인사들이 몽양 여운형을 중심으로 신한청년단을 조직하고, 신한청년단은 1919년 3월에 개최 예정인 파리강화회의에 김규식을 한국대표로 파견한 사실과 이를 지원하기 위해 국내, 만주, 연해주, 미국 등에서 우리민족의 독립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신한청년단 회원들을 국내에 파견했다. 그리하여 일본 동경에서 2.8독립선언, 국내에서 3.1운동이 일어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하였으며,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 이러한 3.1 만세운동은 1920년 이후 봉오동전투, 청산리전투 승리 등 무장독립투쟁, 1920년말 좌우합작의 신간회 성립과 더불어 우리민족의 지속적인 독립투쟁을 전개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했다고 평가된다.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커다란 업적을 남겼으면서도 적절한 평가를 받지 못한 몽양 여운형 선생의 독립운동 업적 소개. 여운형 선생은 1918년 신한청년단 설립 주도, 상해임시정부 수립 및 외교부장으로 활동, 1920년 11월 적도인 동경에서 일제의 조선 강점의 부당성 및 조선독립의 당위성을 주장하여 일본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으며, 조선체육회 회장이자 조선중앙일보 사장으로서 1936년 손기정 선수의 올림픽 금메달 시상식에서 일장기 말소 사진 게제, 건국동맹 등 건국준비위원회 설립 등을 일제 패망이후의 국내 치안유지에 공로가 크다. 특히 해방정국에서 미소간 냉전이 격화되고 남북 단독정부 수립 주장이 강화되는 와중에서도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다가 10차례의 테러공격을 받다가 1947년 7월에 국내주요인사중 첫 번째 테러의 희생자가 되었다.

이제 3.1절 100주년을 맞아 작금의 남북화해 무드가 무르익는 시점에 남북의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노력했던 백범 김구 및 몽양 여운형 선생 등 독립지사의 노력을 새롭게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 함부르크한인회 제공 】【 정리 이 순 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