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문향회 25주년 출판기념회 성황

베를린 문향회 창립 25주년 동인지 제3집 출판기념회 가져

Berln】 2018년 11월30일(금) 베를린 소재 주독한국문화원(원장 권세훈)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독일 동포사회에서 가장 오래된 문인들의 모임인 베를린 문향회(회장 윤옥희)가 창립 25주년 및 동인지 출판 기념행사를 성대하게 개최한 것이다.

이 자리에는 정범구 주독일대한민국대사, 권세훈 주독한국문화원장, 오상룡 베를린한인회장, 김연순 베를린간호요원회장, 김진복 베를린글뤽아우프회장을 비롯한 베를린의 각종 한인 단체장과 문향회 회원, 축하객 등 1백여 명이 모여 문향회 탄생 25주년과 동인지 제3집 출판을 축하했다.

권세훈 문화원장이 문학특강까지 한 이날 행사에서 미카 발쩌, 정명렬 회원이 화려한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한국어와 도이치어로 행사를 진행해 관중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먼저 윤옥희 베를린 문향회 회장은 인사말에서 “문향은 1994년 독일에서 최초로 한국문학 동인회 단체로 발족하여 어느덧 25주년을 맞이하게 되었다”며, 두루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특히 최호전 초대회장과 노순근 전 회장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는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각자 쓴 작품을 읽고 함께 토론하며 친선을 도모하는 문향회 회원들은 이런 문학 활동을 통해 고국에 대한 향수를 달래기도, 한국인으로서의 역할을 깨닫기도 한다고 소개했다. 따라서 작품에서는 독일이란 새로운 환경에서 어려운 역경을 이겨내는 동포들의 진솔한 삶의 발자취를 엿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끝으로 윤 회장은 회원들이 오랜 타국생활로 인해 한국에 사는 한국인처럼 성숙한 표현력으로 문장을 곱게 다듬지 못하는 것이 아쉽지만 앞으로도 더욱 좋은 글을 쓰려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정범구 주독일 연방공화국 대사는 축사를 통해 문향회 창립 25주년과 동인지 발간을 축하하며 40-50년 외국 생활을 한 문향회 회원들이 모국어로 자신의 생각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시나 수필, 단편소설을 쓴다는 것은 보통 의미 있고 장한 일이 아니라고 극찬했다. 또한 문학에는 시대가 담겨있다는 정 대사는 미국으로 망명했다 다시 귀국한 러시아의 소설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Aleksandr Solzhenitsyn),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리’, 노동시인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 , 등을 예로 들며 작가에게 말, 특히 모국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울러 정 대사는 오랜 외국 생활의 여러 단면을 문학 작품으로 담아내는 문향회 회원들의 작품에 기대가 간다면서, 독일 최초의 한국 문인으로 ‘압록강은 흐른다(Der Yalu fliesst)’는 유작을 남긴 고 이미륵 박사를 기렸다.

권세훈 주독일한국문화원장은 “문향회 창립 25주년과 동인지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며, 4반세기의 세월 동안 문향회와 함께 해 온 회원들의 문학에 대한 열정과 헌신에 지지와 성원을 보냈다.

아울러 스스로 문학 소년이었다는 권 원장은 “문향이 말해주듯이 문학의 향기는 사라지지 않는다”며 문학적 축사를 이어 갔다. “문학은 차가운 활자에 생명력을 불어 넣어 향기를 내뿜고 한 번 마음속에 내려앉으면 그대로 각인되어 남아있다. 그 향기는 세대를 뛰어넘어 영원히 지속될 가능성도 있다. 이것이야말로 문학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그는 문향회가 또 다른 4반세기에도 소박한 삶의 기록을 통해 가난한 영혼을 어루만져 주고, 그래서 독자들에게 세상이 조금은 견딜 만하다는 안도감을 심어주는데 더 많이 기여하게 되기를 기원했다.

다음 순서로 축하공연이 이어졌다. 첼리스트 김영환과 변혜준이 첼로 2중주로 “Jean- Baptiste Barriere” “Sonate fuer zwei Violencelli Nr.10”을 연주하고, 감미로운 선율에 관중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화답했다.

회원들의 작품을 낭독했다. 박용순 회원이 “친구”를, 변현자 회원이 “추풍낙엽”을, 그리고 박양순 회원이 “나그네” 시낭송을 했다. 임정숙 회원이 에세이 “아버지 사랑-사랑채 젊은이”를 낭독할 때는 목이 멨고, 여기저기서 눈물을 훔치는 장면이 목격되었다.

이어 사정상 뒤로 미뤄진 초대회장의 격려사가 있었다, 최호전 초대회장은 “베를린에 ‘문향회’가 창립된 지 2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며, 처음에도 지금에도 모국어와 도이치어의 틈바구니에서 문학을 공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고백했다. 그는 2001년에 문향 제 1집을, 2005년에 제 2집을, 그리고 이번에 제 3집을 발간하여 매우 기쁘다는 소감을 밝혔다. 그동안의 문학 활동을 통해 회원들 간에 형제의 정이 쌓였다는 최 초대회장은 이렇게 만들어진 연륜에 이어 한글을 잊지 않고 꾸준히 공부하는 것이 회원들이 앞으로 나갈 길이라고 강조했다. 세상의 격변기에도 문학은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여 지속되듯이 회원 모두 힘들게 쌓아올린 터전 위에 더욱 튼튼한 ‘문학의집’이 만들어지기를 바란다고도 했다.

아울러 최호전 초대회장은 25년을 늘 함께해 준 이봉희 박사, 박용순 내과전문의와 노순근 2대 회장, 윤옥희 현 회장에게 특별한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고 했다. 이어 최 회장이 박용순, 노순근, 윤옥희, 안양수 회원에게 꽃다발을 선사했다. 박인숙 회원이 최호전 초대회장에게 꽃다발을 전달하며 그동안 노고에 감사했다.

마지막 순서로 주독한국문화원장 권세훈 박사의 문학 특강이 이어졌다. 권 박사는 1964년 <사상계>에 발표된 김승옥의 단편소설 무진기행 霧津紀行을 중심으로 “문학은 개별적 창조적”이지만 한마디로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하면서도 “그러나 문학을 관통하는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를 화두로 강연을 이어갔다.

이 소설은 현실적으로 출세한 인물임에도 젊은 시절의 번민과 고통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고독한 존재인 나(윤희중)가 무진(안개 나루)으로의 여행을 통해 현실세계에서 잊고 있던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게 되지만, 결국은 다시 현실공간인 서울로 되돌아오고 만다는 내용이다. 이 소설은 한국 현대문학의 전환점이라는데 그 의미를 더한다. 이 소설에서는 종래와는 달리 외부의 사건에 대한 개인의 감동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소소한 일상에 대한 작가의 감수성으로 풀어 나가는 새로운 기류를 보인다.

권 박사는 “결국 현대문학의 주제는 일상적 개인의 실패한 삶을 표현할 때만 리얼리티를 획득할 수 있다”면서 “문학이 추구해야 할 리얼리티가 바로 이것이고, 그래서 현대 문학이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한 문학은, 문학의 주인공은, 작가가 글을 통해 살게 한 삶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일단락 짓는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면 우리는 왜 일상적 개인의 실패한 삶을 읽어야하는가? 하고. 그리고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면서 “결국은 우리는 작가가 주인공을 또 다른 세계로 내보내면서 삶에 대한 실험을 했는데, 그 실험은 필연적으로 현대사회는 개인과 사회 전체와의 고독한 투쟁이라 볼 수 있기 때문에 거기서 패배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것은 문학이 갖고 있는 이율배반적인 것이며, 문학이 갖고 있는 힘이라는 권 박사는 이율배반적 삶을 읽으면서 작가는 자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주인공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질문 말이다. “이 질문을 갖는 사람이 하나 둘 늘어날 때 이 사회는 조금 견딜 만하다. 이것이 결론”이라며 권 박사는 이날의 강연을 마무리했다.

【 이 순 희 기자 】

 

  <기자수첩>

-베를린 문향회 출판 기념회에 다녀와서-

문학의 핍진성. 리얼리즘, 생생함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이 용어가 생각난 것은 무엇이었을까? 겨울비가 잔잔하게 내리는 11월의 마지막 날, 올해로 창립 25주년을 맞는 <베를린 문향회 출판 기념회>에 다녀왔다. 문학의 꿈을 안고 대학에서 공부를 한지도 벌써 10년이 훌쩍 지나 버린 지금, 나는 어느 전공 수업인지 조차 기억나지 않는 그때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이젠 평범한 독자로서 문학을 즐기지만, 지난 밤 <베를린 문향회 출판 기념회>는 문학에 가슴 뜨거웠던, 순수함을 가지고 있던, 그 시절을 다시금 불러일으키는 시간이었다.

나는 이 날 참석한 대다수의 문향회 회원들을 알지 못한다. 그들의 작품을 단 한 편도 본 적이 없었다. 아직 삼십대를 지나고 있는 중이고 이삼십대의 글들과 생각에 더 공감이 많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과 문학적 교류도 친분도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 날 베를린 문향회의 그리 길지 않은 한 시간 남짓의 행사의 끝에서 나는 문학이란 세대를 초월하는 그 무엇이 존재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친구, 자연, 시간, 가족 등 인생의 다양한 시선들에 대한 단어들을 오랜 시간 고르고 골라, 정제하고 걸러내어 압축하고, 한땀 한땀 써내려간 시낭송과 따뜻함이 느껴지는 미문들은 나뿐만 아니라 이 날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게 감동과 커다란 울림을 주었다. 베를린 주독한국문화원 2층 강당을 가득 매운 문향회 회원들과 가족, 지인들을 보며 그들이 낯선 독일 땅에서 먼저 와 겪었을 어려움과 낯모를 고민과 고통, 긴 외로움들이 가슴 깊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특히 솔제니치를 인용하며 우리말로 자기 삶을 표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인간으로서 위대하고, 유의미한 것인가에 대한 주독 대한민국 대사 정범구 박사의 축하 인사는 그가 단순히 기관의 대표로서 인사치레로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문학인의 한 사람으로서,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그 자리에 문학이 관통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고, 문향회 회원들의 열정에 진심으로 가슴 속 깊이 존경을 표했다.

출판 기념회의 말미에는 현재 문화원장이기도 한 권세훈 박사의 <무진기행>을 통한 문학 특강은 이날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무진기행>은 내가 태어나기 전에 세상에 나왔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긴 생명력을 지니는 문학 작품이다. 우리의 다음 세대도 반드시 읽혀질 책이라는 점에서 문학은 전 세대를, 어쩌면 지구가 사라져 없어져 버릴 마지막 순간까지 남아있을 것이라는 것이 고전이 가진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권세훈 박사의 짧지만 무척이나 알찬 강연의 아쉬움을 끝으로 이 날의 모든 행사가 끝이 났다. 시작 전부터 소강당을 가득 매운 사람들과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취재 내내 장내는 뜨거웠지만, 이것이 단순한 열기가 아닌 문예를 창작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슴 뜨거움이었다는 것을 돌아오는 길에 새삼 느꼈다.

문학의 핍진성. 이 날 뜻밖의 생생하고도 박진감 넘쳤던 문학의 밤 취재가 끝나고 문화원을 나오자 어느덧 굵었던 비는 사그라지고 기분 좋은 밤바람이 불고 있었다. 베를린 문향회가 지금 같은 순수함으로 문예를 사랑하길, 다음 세대에도 지속되길 마음속으로 바라본다.

【 수습기자 김 태 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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